1888년 김해 대성동에서 태어나 "나라는 망해도 우리말과 글이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살아난다."는 신념으로 장지영,최현배 등과 함께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여기서 "한글"이라는 잡지를 꾸준히 펴내면서 1929년 108명이 힘을 합하여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한글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말 사전이 나오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이윤재를 비롯한 한글학자 모두를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형무소에 수감시켰는데 이것이 유명한 "조선어학회"사건이다. 이윤재선생은 함흥형무소에서 수감중 55세로 생을 마치셨다. 이에 우리시에서는 선생님의 얼을 기리기 위해 97년부터 매년 10월 9일 한글날에 한산 이윤재선생 추모 한글 백일장을 개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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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