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世之㽵土(세세지장토)를누릴 곳 고성 학림리 학동(鶴洞)은 17c 후반 전주최씨 문성공 최아(崔阿) 의 16세손이며 임란공신 의민공 최균(崔均)의 현손 최형태(亨泰)공이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이 마을에 알을 품고있는 꿈을 꾸었다. 날이 밝자 그길로 꿈에서 본 그곳에 가보니 과연 명당이라, 세세지장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 믿고 동네 이름을 학동으로 부르고 이 마을에 입주, 개척하기 시작했다.
입향조 형태공의 5세손 성화(聖和)최필간(必侃)공이 큰댁에서 분가하니 이분이 최씨고가의 중시조이시다. 손자인 매사(梅史) 최태순(泰淳)공이 현재 규모의 주택으로 확장 개축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최씨고가는 전형적인 남부지역의 사대부가옥의 형식으로, 모든 건물은 일자형 평면 이며, 안채,서익랑채,곳간채,사랑채,대문채로 이뤄져 있다. 안채(우진각 지붕)외 모두 팔작지붕건물이며, 사랑채 4귀에는 넓은 기둥이 설치되어 있으며, 대문채는 맞배지붕의 솟을지붕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 중문 앞에 내외차단벽이 이채로우며, 사랑채-학림헌(鶴林軒)-은 당시 지방 수령-통영 통제사-이 있는 관아와 너무 멀어 민초들이 관청에 드나들기 힘든 시절 지방의 유력자인 최영덕(泳德)씨의 선조들에게 행정권을 위임해준 향소 역할을 했던 곳이다. 때문에 학림헌의 천정은 당시 관청의 그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지대(축담)에는 손 씻는 돌세면대. 소피를 보는 돌거북 등이 있다. 후원 텃밭에 있는 井자 모양의 화강석 우물 뚜껑에 난 3개의 구멍은 천지인을 뜻하며 당시 석공의 솜씨를 자랑한다.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자연석(개석)으로 쌓여져있는 담장은 주변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 전체의 돌담길-학동마을 옛담장-은 등록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주최씨 집안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육영재(育英齋,경남문화재 제208호)를 만들어 일제때 신 교육기관이 생길 때가지 운영하여 많은 한학자를 배출하여 집안에 약 20여권의 문집(文集)이 나왔으며, 1910년 한일합방때 순국 자결한 우국지사 서비 최우순(西扉 崔宇淳)은 필간공의 종손자이며, 3대 국회의원 최갑환(甲煥), 최재구(載九,4선의원) 부자등도 직계 증.고손이다.
안채,곳간채,대문채~각5칸, 서익랑~ 4칸, 사랑채~7칸 겹집으로 이뤄져 있다.
경상남도 지정 도지정문화재 제178호(1990.12.20)
학림리 학동 최영덕씨고가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