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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관광

사천 다솔사

사천 다솔사의 파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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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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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길찾기
  • 관리기관사천시
  • 문의전화055-831-2716
  • 편의시설
    장애인편의시설 놀이시설 수유실 유모차 자전거 와이파이

상세내용

방장산(方丈山) 다솔사(多率寺)는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이다. 이 절의 옛날 행정 구역상으로 곤양군에 속해 있었으므로 흔히 곤양 다솔사로 부르고 있으나 실제로는 곤명면에 속한다. 다솔사는 주산인 봉명산-일명 방장산- 기슭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춘일암(春日庵), 보안암(寶安庵), 서봉암(棲鳳庵) 등이 있다.
다솔사의 연혁은 1704년(조선 숙종 30년)에 절 경내 아래쪽 넓은 평지에 세워진 조선국 경상우도 곤양군 북지리산 영악사 중건비(北智異山 靈岳寺 重建碑)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 1761년(조선 영조 37년) 기록된 다솔사 명부전, 대양루, 사왕문의 중건기와 1779년(조선 정조3년)에 기록된 "다솔사 팔상전 중수기"등 두 기록이 참고가 되고 있다. 그런데 채팽운이 지은 영악산 중건비에 나타난 임진란 이전의 기록은 매우 간략하고 애매한 부분이 있으나 이를 기준하지 않을 수 없다.
영악산 중건비에 나타난 다솔사 연혁은 신라 지증왕 4년(503년 일부자료에는 다솔사의 창건을 신라 지증왕 12년인 511년에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어느 자료에 근거 하였는지 알 수 없다)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영악사라 하였고, 그 후 선덕여왕 5년(636년) 자장율사가 건물 2등을 신축하고 다솔사로 개칭하였다 한다. 의상대사가 문무왕 16년(676년)에 세 번째 중수하고 절이름을 영봉사라 고쳤는데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네 번째로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영악사로 다시 고치고 그뒤 (1326년 고려 충숙왕 13년) 나옹화상이 중수하였고, 고려말 공민왕때(1352~1374)에 왕사 보제존자 혜근 스님이 다시 중수 하였다. 조선 초기에 영일 ,효익 스님 등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의 전화로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인 숙종 12년(1686)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10년 세월에 걸쳐 중창불사로 크게 중흥했다. 그러나 62년이 지난 후인 영조 24년(1748)에 큰 불로 말미암아 불행히도 큰 재앙을 겪었으며 같은 왕 34년(1758)에 여러 스님이 또 합심하여 명부전과 대양루, 사왕문을 중건했다.
연기조사는 544년 구례화엄사를 창건하였는데 이보다 41년 전에 다솔사를 창건하였다. 그가 방장산에서 토굴 수도 하였다는 전설이 소년기에 있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다솔사의 절이름이 절을 중수할 때마다 바뀐 것은 신라 시대의 사찰 대부분이 고승의 이름을 창건주로 하여 유래와 그 전통을 높이려는 뜻에서 자주 개칭된 것으로 해석된다. 1704년 이전의 기록에는 영악사로 나타나는데 1758년 부터는 일관되게 다솔사로 나타난다. 절이름인 "다솔"에 대해서는 이 절에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주산이 마치 대장군이 앉아 있는 듯하기에 거느린다는 뜻에서 다솔이라 하여 군대를 거느리다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다솔사 입구에는 계곡수를 담은 저수지가 막혀있고, 계곡의 평평한 지대에는 소나무의 집단지로서 거목의 적송이 하늘높이 밀림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간간이 전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사찰입구에서부터 울창한 수목이 자연의 힘찬 기상을 자랑하는 듯 서있고, 절 입구로 들어서면 봉명산이 우뚝 높이 힘차게 서 있고, 주변의 산맥이 두 팔을 넓게 벌리듯 사찰을 품고 있다. 울창한 대나무가 사찰 주변을 감싸고 있고, 절앞의 넓은 광장주변에는 전나무가 줄을 서 있다. 주산인 봉명산의 웅대한 위용과 계곡의 수목은 천년고찰 다솔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찰입구 큰 바위에 "어금혈봉포"가 크게 음각되어있고 광서 11년 을유 9월이라고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데 이는 고종 22년(1885년) 정모, 정암, 해명, 응월 스님이 직소하자 고종께서 어명으로 금지시킨 것이라 한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대양루와 첫 인사를 하게된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83호로 지정된 대양루는 1749년 조선영조 25년에 건립되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맛배집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 전체 건물 길이 13m에 이르며 건평 106평의 큰 건물로 육중하면서도 고졸한 맛이 있다. 대양루로 올라가는 계단앞 한켠에는 숙종 30년(1704년) 세운 다솔사 중건비가 서 있다. 거북이 몸통같이 생긴 자연석 위에 영악사 중건비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바로 마당 골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83호로 지정된 대양루가 있고, 뒤쪽에는 응진전, 극락전, 요서거 등이 서 있으며 오른편에는 승방과 종무소 등 10동의 건물이 있다. 1914년 12월 7일 다솔사에 뜻하지 않은 화재가 발생하여 3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1916년 대웅전, 나한전, 명부전을 비롯한 선당, 승당을 중건하였다. 이때 대양루 위에는 추사 김정희의 휘호인 유천희해(游天戱海)라는 현판이 걸려있었으나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
보안암에는 무덤 모양의 석굴이 있는데, 목조 전실을 지나서 2미터 가량 들어가면 석실이 있고, 그 중앙에 불상, 뒤쪽 좌우에 각각 여덟 개의 나한상이 배치되어 있다. 경주 석굴암의 양식을 따른 점이 주목된다. 이 석굴은 뒤쪽에 위치한 하동군 이명산 석불사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시기에 한용운, 김법린, 김범부, 최범술 등이 만당(卍黨)을 결성하여 이곳 다솔사에서 은거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절 주위에서 재배되는 죽로차는 반야로(般若露)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연 혁
-신라 지증왕 4년에 창건.임진왜란때 소실
-숙종12년에 승려들이 중창불사.영조24년에 불탐
-영조34년에 명부전과 대양루 사왕문을 중건
-1914년 12월에 탔음
-1915년~1918년중건(현존건물)


관광 포인트
-울창한 숲으로 경치가 수려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며 등산코스가 좋아 해발 300m가 넘는 봉암산, 봉명산, 천왕산들을 연결하여 국립공원인 다도해를 관찰할 수 있는 등산객의 좋은 길목이다.


주변 볼거리
-보안암 석굴까지 도보로 30분거리에 위치
-서포 비토해안변까지 15분 거리에 위치
-와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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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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