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의 상징적 문화유적으로서 가락국(서기 42년) 시조대왕의 수로왕릉(首露王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수로왕은 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의 시조이며 가락국의 시조이다. 가락국의 건국신화인 구지봉 설화의 주인공인 김수로왕은 알 중에서 맨 처음 나왔다 하여 "수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수로왕은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되는 서기 42년에 김해에 가락국을 세우고 문물을 정비하는 등 가락국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그는 무척 덕스러운 임금이었던 것 같다. 대궐을 짓기 전에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먼저 걱정했고, 외적의 침범에 대비해 성을 쌓을 때도 농번기를 피했다고 한다. 수로왕은 서기 199년 158세의 나이로 숨졌다고 한다.
이 능의 봉분 형식은 원형 토분이고 봉분 자체에는 특별한 시설이 없다. 1580년(선조13년) 영남 관찰사가 능을 수축하면서 상석, 석단, 능표등을 설치하여 왕릉다운 위엄을 갖추게 되었다. 이 능 앞에는 1647년(인조 25년)에 세운 능비가 있고, 비에는 "가락국수로왕릉"이라 새겨져 있다.
왕릉 앞의 납릉정문(納陵正門) 위에는 신어상(神魚像)이라 불리는 석탑을 가운데 두고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보는 문양이 새겨져 있고, 왕릉을 보고 왼쪽에 있는 비석의 이수에는 태양문(太陽紋)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문양이 인도의 야요디야에서 흔히 보이는 것과 닮아 있어,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인도 아유타국의 허왕후가 파사석탑(婆娑石塔)을 배에 싣고 왔다고 전하는 것과 연결시켜 보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고대의 낭만적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좋은 자료이다.
임진왜란 때 이 능도 도굴됐는데, 고종 2년(1884)에 숭선전이란 호를 내리고 침묘를 개축하고 안향각과 신도비각, 석수를 설치하였다.
한편, 김해시 북부동 구릉지대에 있는 능은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의 묘이다. 능은 대형의 원형 봉토분으로 주위에는 아무런 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 그 규모는 길이 18m, 폭6m, 높이 약 5m이며 능 주위에는 얕은 돌담이 방형으로 둘러져 있다. 능 전면에는 장대석으로 추개를 쌓고 능 앞에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지릉"이라 새긴 능비가 서 있다. 이것은 수로왕릉의 것과 같은 시기에 설치한 것이다.
매년 가을 수로왕릉에서는 "추향대제"라고 부르는 김해 김씨 문중 제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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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3-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