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목 : 유형문화재 제 324호
* 지정일 : 1997년 12월 31일
* 분류 : 입석 및 상
* 규모(수량) : 1 軀
* 시대 : 조선 전기
* 소유자 : 고제면 농산리 입석 마을회
약 350여년전 문화유씨가 정착하여 인가를 이루었으며 경작지의 논 한가운데 선돌이 있어 경작시 마다 불편하여 빼어냈더니 그 이후에 마을에 재앙이 계속되어 다시 원래 위치 로 옮겨 놓았더니 마을에는 계속하여 풍년이 들고 재앙이 사라졌다고 하는 유래가 있다. 그 이후 마을에서 돌이름을 입석이라 하였고 마을 이름도 선돌, 입석으로 불리게 되엇다고 한다. 선사시대의 선돌에 선인상(仙人像)을 조각하여 큰바위에 부처를 새긴 불상으로서 입석의 좌측하단에 성혈이 있는 것을 볼수있다. ·2000. 11월 문화재보수사업으로 아을회관 1m 앞쪽에 있던 것을 현위치(13m 이격)로 축대를 조성하여 이건하였다.
입석(立石)은 고인돌과 함께 큰돌문화의 일종으로, 선돌이라고도 한다. 선사시대에는 고인돌 주변에 세워져 묘의 경계를 표시하기도 하였고, 역사시대에 접어들면 마을 입구에 세워 귀신을 막거나 지역의 경계를 나타내며, 토착 신앙과 합쳐져 장수를 비는 칠성바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농경 사회의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의식이나 인간과 가축의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의식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 입석은 커다란 바위를 길게 다듬은 후 신선(神仙)의 모습을 새긴 것이다. 입석의 높이는 2.2m 정도인데, 가장 넓은 쪽의 너비는 1.5m, 두께는 약 30㎝ 정도이다. 정면에 새겨진 그림의 크기는 약 1.8m이다. 입석의 왼쪽 아래 면에는 알구멍[性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것은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하는데, 농경 사회 당시 사람들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 흔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태양을 숭배하는 제사 의례와 관계있는 주술적 의미로 보기도 한다. 한편 이곳 농산리를 흐르는 냇물을 가로질러 서 있는 높이 6m, 길이 11m의 ‘높은 다리’[高梯, 여기서 고제면의 이름이 유래]를 지나는 옛 길이 삼남대로였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입석은 길의 방향이나 이수(里數)를 알려주는 이정표 구실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산리 입석 음각선인상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