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번호 : 사적 제 120호
적포만의 해안 수양산 아래에 있는 이곳 고분군에는 지금 61기의 가야시대 고분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는 100여기의 고분이 있었다고 하나, 일제시대부터 도굴과 파괴를 당하여 많은 수가 없어졌다.
고분의 구조는 땅을 파고 깬돌로 묘곽의 벽을 쌓고 판석으로 덮은 다음 봉토를 씌운 수혈식석곽분으로 낙동강 유역 가야 고분의 일반적인 형식이다. 이곳에 이러한 큰 고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였던 상당한 정치세력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내산리 고분군을 집중 축조한 집단은 다수의 금은 장식품과 정교한 유리제품 같은 출토유물로 보아 바다를 이용한 대외교류를 통해 성장 기반을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고성 내산리 21호분은 하나의 봉토 내에 12기의 중소형 석곽이 축조되어 있는 다곽식 유구로 확인되었다. * 다곽식 묘제에서 배장유구의 축조 순서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의 확보. * 5차에 걸친 고성 내산리 고분군에 대한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동 고분군의 중대형 봉토 분은 옛 소가야 전성시기와 연관된 5세기중엽에서 6세기 전반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됨. * 남해로 둘러 쌓인 지리적인 장점과 다수의 금은 장식품 및 정교한 소형 유리제 환옥의 존재로 보아 고성 내산리 고분군 축조 집단은 바다를 이용한 대외 교류가 이 집단의 중심적인 성장 기반이었던 것으로 추정됨.
내산리고분군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