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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남명 조식 유적지

남명 조식 유적지의 파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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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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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산청군 시천면 원리길  길찾기
  • 관리기관
  • 문의전화055-973-9781
  • 편의시설
    장애인편의시설 놀이시설 수유실 유모차 자전거 와이파이

상세내용

한 가지 일에 평생의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소명을 찾는 것도 어렵고, 그 긴 세월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리산의 맑은 기운이 내려 있는 마을, 산청에는 강인한 기상으로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평생을 힘쓴 남명 조식 선생의 삶이 남아 있다. 선생이 후세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산청군 원리와 사리에 있는 선생의 유적을 따라가며 대답을 얻어 보자.

학업과 삶의 일치, 의병을 키워내다.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은 연산군 7년(1501)에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부친을 따라 다니며 학문을 익히고 백성들의 생활상을 경험하였다. 30세에 김해의 신어산 아래 산해정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48세부터 조정의 벼슬자리에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55세 때는 벼슬을 거절한 단성소라는 상소문을 거침없는 표현으로 작성해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조식이 산청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61세가 되던 해였다. 그는 투철한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 정치에 가담한 적은 없었다.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택한 것은 자신의 학문 정진과 제자 육성이었다. 배운 것대로 삶을 살아야 하는 실천을 강조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장에 나간 의병 중 많은 이가 선생의 제자였다는 사실에서도 학업과 실천의 일치를 강조한 가르침을 엿볼 수 있다. 1572년 7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올곧은 선비의 삶을 지켰다.

사진
사진설명
  • 1. 남명의 영정에 내린 선조대왕의 제문
사진
만년의 지혜가 내려 있는 산청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는 조식과 제자들이 공부하던 산천재가 있다. 선생은 운명하는 그날까지 만년의 지혜를 이곳에서 나누었다. 사적지 안에는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산천재와 남명 선생 문집 책판이 있는 장판각이 자리하고 있다. 산천재 앞에는 매화나무 한 그루도 함께 보호받고 있다. 조식이 산천재를 짓고 앞 뜰에다 심은 것으로 전하는 나무다. 후세에 남명매라고 불리게 되었다.
도로 맞은편에는 선생의 석상과 함께 2005년 완공된 남명기념관이 있다. 누구나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선생과 관련된 유물들을 모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지도 같은 그림에 시선이 멈춰진다. 신명사도라는 그림이다. 마음이 작용되는 것을 임금이 신하를 거느리고 정사를 보는 이치에 비유하여 도식화한 것이다.

전시관 옆에 마련된 공간에는 선생과 관련된 서적을 판매하고 있다. 기념관 옆으로는 선생의 위폐를 모셔놓은 여재실이 있다. 선생의 문중에서 매년 제사를 드리는 가묘이다. 사리에 있는 유적지는 선생의 생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곳곳에 쓰여진 선생의 시에서 선생의 평소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선생을 기리며 쓰여진 신도비와 선조대왕의 재문에서는 선생에 대한 당대인들의 존경을 느낄 수 있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고, 한 번 말한 것을 지키려 하고, 배운 대로 가르치고 가르친 대로 살았던 선생의 삶은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해준다.
사리에서 1km 정도 떨어진 원리에는 덕천서원이 있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4년 후에 문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중창되고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문이 닫혔다.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은 1926년 경이다.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입구 앞을 지키고 있다. 안 쪽에는 서원의 본당인 경의당이 있고 양 옆으로 유생들이 공부하며 거처하던 방들이 있다.
경의당 뒤편에는 선생과 선생의 제자인 최영경의 위폐를 모신 숭덕사가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봄, 가을에 제가 올려지며, 선비문화축제의 일환인 남명제가 열린다. 서원 입구 앞 강가에는 유생들이 휴식을 취하던 세심정이 자리한다. 당시에 지어졌던 세심정은 소실되었고, 지금의 세심정은 1930년대에 복원된 것이다. 세심정이라는 이름은 성인이 마음을 씻는다라는 뜻의 성인세심이라는 문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는 원리의 유적지는 선생 사후에 이어진 후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나고 다시 묻힌 남명 조식. 평생 지리산에 오르고 내리며 어떤 지혜를 얻고자 했을까? 산청에 자리한 선생의 유적을 답사하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은 더욱 오리무중일 뿐이다. 선생이 생전에 제자들을 가르치던 방법인 ‘자해자득’ 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유적지를 돌아 나오는 동안에도 계속 머리 속에 맴도는 선생의 한시가 약간의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한다.
‘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없다오 / 어떻게 해야만 두류산처럼 /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사진설명
  • 1. 여재실 전경
  • 2. 세심정 전경
  • 3. 덕천서원 전경
  • 4. 덕천서원 안 유생들이 거쳐하던 곳
맛집
  • 구만횟집식당 : 단성면 창촌리, 회, 055)972-5021
  • 원조문산선지국 : 단성면 창촌리, 해장국, 070-4404-1786
  • 청담농원 : 단성면 자양리, 닭요리, 055-973-7136
  • 물레방아식당 : 시촌면 원리, 한정식, 055)972-8290
  • 팔도한우촌 : 시촌면 사리, 육류, 055)973-0092
숙소
  • 지리산마로니에펜션 : 삼장면 대포리, 055)973-5911
  • 예원펜션 : 시천면 천평리, 010-5771-5507, www.yewonpension.com
  • 리버펜션 : 사천면 천평리, 055)972-8456, www.riverps.kr

교통정보

중부고속도로




  • 진주I C→단성I C (소요시간10분)


  • 단성IC→시천(소요시간15분)




진주↔함양국도3호선




  • 진주→신안(소요시간20분)→시천(소요시간15분)




함양↔진주국도3호선




  • 함양→신안(소요시간40분)→시천(소요시간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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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 관광개발국 관광정책과  
  • 연락처 : 055-211-6051

최종수정일 : 201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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