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혁 - 조선시대
겸재 하홍도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조선 중기 학자인 하홍도(1593∼1666)는 성균관 유생으로 동료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광해군의 실정으로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저서로는 『겸재집』이 있다.
모한재는 선생이 도학을 연구하고 학문을 강의하던 곳으로 당대의 현인인 미수 허목, 약천 남구만 등이 지내기도 한 곳이다. 여기에는 미수 선생의 친필을 보관하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10일에는 영남 사람들이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조선조 인조때 (1635)에 하홍도선생이 창건하여 중국 송나라 송자의 한천정사를 사모하는 뜻에서 모한재라 이름하여 도학을 연구하고 학문을 구하던 곳이다. 선생의 사후 남방유림들이 선생을 모시고자 1676년 서원을 창건하였으나 1868년 대원군에 의해 훼철되었다.
선생의 수직목으로 알려진 백일홍, 은행나무, 모감치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당대의 명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조선 중기 학자인 겸재 하통도 선생은 성균관 유생으로 동료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광해군의 실정으로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천묵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저서로는 "겸재집"이 있다.
하홍도 선생을 모시고자 후에 선생의 사후남방유림들이 서원을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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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