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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용문사

용문사의 파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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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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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남해군 이동면 용문사길 166-11  길찾기
  • 관리기관남해군 문화관광과
  • 문의전화055)860-8603
  • 편의시설
    장애인편의시설 놀이시설 수유실 유모차 자전거 와이파이

상세내용

남해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호구산. 해발 650m의 이 산에는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절, 용문사가 기다리고 있다. 매점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원한 계곡에 잠시 머무른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호구산 계곡의 맑은 물은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마을로 흘러든다.
용문사 답사의 참 맛을 알려면 주차장에서 차를 세워야 한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들꽃, 산꽃향에 묻혀 산길을 걷는다면 속세의 번뇌가 한꺼번에 가실 것이다. 굳이 차를 끌고 산길을 올라가야 하겠는가? 매점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잠시 걸으면 일주문 입구 우측 약간 높은 곳에 부도가 보인다.
부도(浮屠)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 부도는 법제문도(法第門徒)들이 선사(先師)를 섬기는 극진한 마음에서 선사가 입적한 뒤 정성을 다하여 세우는 것이다 부도는 남부지방에서는 찾기 힘들다고 한다. 부도는 모두 9기로 용문사가 선사를 많이 배출한 오래된 전통 사찰이라는 상징에 다름 아니다 원효대사는 남해와 인연이 매우 깊은 것 같다. 용문사 역사도 원효대사로부터 시작한다.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보광사을 짓고 산명도 보광산이라 했다.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瞻星閣)을 세우고 금산에 있었던 보광사를 이 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용문사는 보광사의 후신으로 등장하는 사찰인 셈이다. 조선시대 현종 원년(1660)에 남해현의 남해향교와 이 절의 입구가 면대하였다 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백월당 대사가 남쪽에 있는 용소마을 위에 터를 정하고 용문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백월당 대사는 스님들과 함께 먼저 선당양당(禪堂兩堂)을 지었다. 승당은 신운이 모화하여 다음해인 현종2년(1661)에 준공했다. 그리고 6년 뒤에 일향이 대웅전을 창건하였고 지해가 윤색하였으며 성암이 봉서루를 창건하였고 태익이 낙성했다. 이밖에 나한전은 보휘, 명부전은 설웅, 향적전은 인묵, 첨성각은 설잠, 천왕각은 유탁, 수각정은 각오가 낙성한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어 숙종34년(1708)에는 염불암을 중창했다. 관음, 백운 두 암자는 고을사람들의 발원으로 축조했다는데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뒤에 백련암(白蓮唵)을 절의 서쪽에 신축하였다.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승려들이 용감하게 싸운 호국사찰이다. 그 증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용문사에 보관 중인 삼혈포라는 대포, 그리고 숙종이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내린 수국사 금패가 그것이다. 조선 숙종(1675∼1720)은 용문사를 수국사로 지정하고 왕실에서 용문사 경내에 축원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비롯하여 연옥등, 촉대, 번 등을 하사했다. 그러나 연옥등, 촉대 등은 일본 강범기에 없어지고 지금은 번과 수국사 금패만 보존되어 있다.
모든 절이 그렇듯 용문사 일주문도 일반 건축물과 달리 일직선 기둥 위에 지붕을 얹었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 번뇌로 부산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가르침이다. 옆에는 "세속의 번뇌를 씻고 불국토로 들어가라" 속삭이는 듯이 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용문사는 민초들 곁에 영원히 있고자 했던 사찰이다. 돌다리를 건너면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천왕각이다. 오른손에 장검을 든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 노한 눈으로 오른손에 용을 움켜쥐고, 왼손은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서있는 증장천왕. 또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은 삼지창을 들고 무섭게 서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은 오른손으로 비파를 튕기며 환히 웃고 있다.
용문사 천왕문에서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사천왕 발밑이다. 다른 절 사천왕이 마 귀를 밟고 있는데 비해 용문사 사천왕 발에 밟혀 신음하는 것은 관리, 양반이다. 권력을 탐하거나 아부하지 않고 민초들 곁에 있고자 했던 용문사의 정신을 잘 알 수 있다. 탐진당 불이문에서 바라본 용문사 대웅전, 팔작지붕, 다포식 건축물은 우선 화려한 느낌을 받는다. 대웅전을 제외한 탐진당, 적묵당을 비롯한 절집은 가파른 비탈에 세우느라 처마들이 서로 닿지 않도록 한쪽은 팔작식 지붕, 다른 쪽은 겹처마 맛배지붕으로 지었다. 처마 밑 공포는 화려한 다포식과 단아한 주심포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불자가 많아 법당이 비좁아 뜰에서 법회를 올릴 때 부처님 상을 내걸었던 괘불대, 거대한 구시통(설겆이통)은 불자의 수가 상당했음을 추정케 한다.
하지만 용문사의 백미는 단연 산신각 뒤를 돌아 올라 산자락에서 지긋이 내려다 보는 풍광이다. 처마들이 연 이어진 용문사 지붕 앞으로 호구산, 금산 자락이 삼각형을 이룬 꼭 가운데에 호수처럼 담겨있는 앵강만을 보지 않으면 용문사 구경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 관광포인트
호구산, 설흘산, 가천다랭이마을, 두곡·월포해수욕장, 사촌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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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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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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