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의승장이었던 사명 대사는 중종 39년(1544년)에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의 풍천 임씨 집 안에서 아버지 교생 수성과 어머니 달성 서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증조부 임효곤은 문과에 급제하여 장낙원정이 되어 대구 수령으로 있다가 밀양에서 살았는데, 사명당의 조부는 괴과에 급제하여 강계 부사를 지낸 유학 종원이다.
이름은 유정 또는 응규라 하였고 호는 종봉, 송운, 사명이다. 13세 때인 명종 11년에 유촌 황여헌 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우다, "세속 학문은 천하고 비루하여 시끄러운 세상 인연에 얽매여 있으니 어찌 번뇌없는 학문을 배우는 것과 같을 것인가?" 하고 그 해 가을 황악산 직지사로 가서 신묵화상에게 머리를 깎고 선문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명당이 출가하기 전에 살던 고향집은 이전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가 지형상 399 번지1가 이곳을 축으로 하여 뒷산의 주맥이 흘러 내려오고 있는 지점이라 증조부 임효곤이 풍수지리상 명당 터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장의 유구를 조사한 결과 기와 파편, 생활 용품 파편 등이 발견되었고 건축물의 유구로 보이는 담장의 흔적들도 발견되어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399 번지로 결정하고 밀양시에서 생가지 정비 작업을 시행(부지 매입 및 기반 조성, 생가지 정비, 기념비 건립)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밀양시는 호국 사명 대사의 유적지를 성역화하여 구국 정신을 선양하고 영남루, 표충사, 얼음골 등 불교 사찰 및 유적지와 연계한 관광 벨트화를 기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가하고 있다.
사명대사 생가지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