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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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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DB-상세

진주 검암리 하윤묘비 및 석인상

  • 소재지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산45-6
  • 분류
  • 시대조선시대
  • 지정유형시도유형문화재
  • 지정일2012-12-27
  • 수량(면적)395
  • 관리자진양하씨운수당공파종중

조선 중기에 검암리 행우산 기슭의 묘역에 세워진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 1452~1500)의 묘비와 석인상이다. 운수당의 본관은 진주이며 1477년(성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483년(성종 14) 춘당대시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검열에 임명되어 1486년(성종 17) 집안의 노복(奴僕)을 함부로 가두는 폐단을 왕에게 보고하여 시정하게 하였다. 1488년에는 사관(史官)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예문관 봉교로서 붕당을 저질러 유배된 임사홍(任士洪)의 서용을 반대하였다. 이듬해예조좌랑으로 왕명을 받고 영안도(永安道, 함경남도)에 가서 민폐를 살피고 돌아왔다. 1490년 모친상을 당하여 사직하였다가 1494년(연산군 즉위년) 호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형조좌랑에 임명되었다.\n1496년(연산군 2) 사헌부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연산군의 난정을 보고는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갔다. 이후 다시 관직에 등용되어 지평을 지냈는데, 1498년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廢妃尹氏)의 입묘추숭(立廟追崇)을 반대하여 순천군수로 좌천되었다. 진주 정강서원(鼎岡書院)에 배향되었으며 당대의 명유로 정광필(鄭光弼)과 교유하였다.\n하윤 묘비는 사후 2년 뒤인 1502년에 건립되었으며 1851년에 다시 세웠다. 묘비는 묘에서 구릉하단부로 보았을 때 왼편에 위치하고 묘비의 총 높이는 235㎝이고 비신은 147㎝이다. 폭은 80㎝이고 두께는 27㎝이다. 비문은 정광필이 지었는데 정면에는 황명홍치십오년임술삼월입석 유명조선국조산대부순천군수진양하씨공위윤지묘(皇明弘治十五年壬戌三月立石 有明朝鮮國朝散大夫順川郡守晋陽河氏公諱潤之墓)라 되어 있다. 뒷면에는 하윤의 일대기가 적혀져 있다. 부좌(趺坐)는 방부형(方趺型)이며, 개석은 연꽃을 뒤집어 놓은 복련(覆蓮)형태의 화관형(花冠型)이다.\n무덤의 전면 좌우에는 한 쌍의 석인상(石人像)이 설치되어 있는데 높이는 약 2.3m이다.

  • 담당부서 : 문화관광체육국 문화유산과  
  • 연락처 : 055-211-4551

최종수정일 :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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