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번호 : 경상남도 기념물 제 46호
* 수량 및 규모 : L=818M, H=2.5M
동국여지승람 이보흠의 축성기에 의하면 고려 말 왜구를 피해 거창으로 피난갔던 거제도민이 조선조 세종 때 돌아와 수월리와 사등성내에 머물렀으나 주민이 너무 많아 성이 협소하여 다시 고현성을 쌓아 현종 때까지 거제군의 치소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달에 경상도 거제현성을 쌓았다.(문종 원년 11월), 승지병조사 김순우를 보내 감독하게 하였다. (단종 원년 8월) 이 기록을 보아 고현성은 문종원년(1451년)부터 단종원년(1453년) 사이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성곽의 형태와 구조는 계룡산기슭의 동쪽으로 뻗은 설장대지 위에 평면의 선형으로 축조된 석축성으로 삼문옹성과 치(雉), 해자(垓子)를 구비한 전형적인 조선전기 읍성구조를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에 의해 함락당한 뒤 현종 4년에(1663년) 거제면으로 치소를 옮긴 다음 곧 폐허가 되었고 6.25사변때 UN군 포로수용소가 이 곳에 설치됨으로써 그 파괴는 극에 달하였다.
현재 상태 파악이 가능한 성벽은 길이가 818m인데 평균높이가 2m이며, 폭이 5.5m가량으로 성내는 거제시청이 자리잡고 있다. 축조수법은 외벽의 경우 구릉사면을 생토층에서 ㄴ자형으로 절개하고 그 생토층에 자갈을 깔아 다진 다음 장대석을 일배열하여 기단석으로 삼고 그 위에 성돌을 올려놓았다.
내벽의 경우는 당시의 지표면을 50~60㎝깊이로 파고 그 위에 사람머리만한 할석으로 쌓아 올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3.038尺이고 높이가 13尺이라고 하였고, 그 크기는 남해안의 읍성 가운데 중간 정도이며 높이는 높은 편에 속한다. 1991년에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부분적인 발굴조사가 실시되고 1991년에 그 보고서가 간행되었다.
고현성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