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면 원평리 남계마을에 있다. 명종 7년(1552)에 개암 강익이 문헌공 일두 정여창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고 명종 21년(1566)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나촌(九羅)에 세워져 광해군 4년(1612)에 옛 터인 현재의 자리에 중건되었다. 숙종 3년(1677)에 문간공 鄭蘊 선생을 배향하였고, 숙종 15년(1689)에 介庵 姜翼 선생을 동편에 배향하였다. 고종 5년(1868)년에 별사가 철거되었다. 건물은 정문인 풍영루를 들어서면 정면에 강학공간인 강당이, 그 뒤에 제향공간인 사당이 자리하고 있어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고 있다. 강당의 우측에 장판각이 있고 강당의 좌우 앞으로 각각 동재와 서재가 있다. 동재는 양정재, 애연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서재에는 보인재, 영매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동재 앞에는 연못이 있고 서재 앞에는 「남溪書院廟庭碑」 가 있다. 입구에 홍살문이 있고 그 옆에 하마비가 1기 있다. 『양어정오경』 등 서적이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다. 도유형문화재 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최종수정일 : 202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