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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관광

합천묘산묵와고가

합천묘산묵와고가의 파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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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se 코스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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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계절사계절
  • 추천일정1102
  • 여행유형체험
  • 지역합천군
  • 관리기관010-3455-3438
  • 문의전화010-3455-3438
  • 편의시설
    장애인편의시설 놀이시설 수유실 유모차 자전거 와이파이

상세내용

고택 이름인 묵와(默 잠잠할 묵, 瓦 기와 와)의 뜻은 세상일에 나서지 않고 조용하게 낮은 자세로 살겠다는 뜻이다. 고택이 자리한 화양마을은 560여 년 전, 수양대군의 세력에 반대하는 김종서의 처삼촌 윤장이 어지러운 난을 피해 조용히 은신하고자 찾아들어 정착한 곳으로 파평윤씨 집성촌이다. 이 고택은 선조 때 선전관을 지내고, 인조 때 영국원종 일등공신으로 봉작된 파평윤씨 윤사성(尹思晟)이 지었다고 전하는 옛집이다. 1919년 유림들이 파리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서한을 보낸 파리장서 사건(巴里長書事件)에 참여하였던 독립운동가 만송(晩松) 윤중수(尹中洙, 1891~1931)가 그의 10대손이다. 윤중수는 많은 집안 재산을 독립군을 양성하는데 내 놓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만주 무순에서 왜경에 체포되어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고향에 돌아와 41세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고택은 처음 지을 당시에는 집터가 600평이었고 명당의 산기슭에 의지하여 높게 지었다고 한다. 창건당시 건물이 여덟채나 되고 100여칸이나 되는 사대부 집이었으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를 비롯한 사당, 대문채, 방앗간채, 중행랑채, 곳간채가 튼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택의 구조는 솟을대문을 들어가면 왼쪽으로 산기슭에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사랑채에는 오른쪽으로 치우친 T자형 구조로, 마당보다 훨씬 높게 하여 기단을 쌓고 정면으로 누마루가 돌출되어 있다. 구성은 중앙 두 칸의 방과 마루방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2개의 방을 나란히 두고, 좌측으로 다락을 두었다. 사랑채에는 묵와고가(默窩古家)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오른쪽으로 중행랑채가 이어지는데 중문을 통해 안마당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안채는 행랑채보다 한단 높은 기단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ㄱ"자형이다. 북측면으로 2칸으로 된 안방과 좌우로 2칸의 대청과 부엌을 두었다. ㄱ자로 꺾어진 좌측으로는 작은 대청과 건너방, 작은 부엌을 두었고, 안마당 오른쪽으로 창고가 있다. 안채 왼쪽 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별도의 토담을 쌓아 사당을 두었다. 대문채는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좌측으로 헛간과 우측으로 2칸의 행랑방을 두었다. 이 고택에는 화양마을 입향조인 윤장(尹將)선생이 계유정난을 피해 마을에 은둔할 때 심었다는 수령이 600년이나 된 모과나무와 수령 250년 정도의 회화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어 고택의 정취를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 현재 고택에서는 전통다도실을 운영하여 다도체험이 가능하며, 소학강의와 문방사우를 이용한 붓글씨 체험 프로그램도 신청자에 한하여 이루어진다. 이 고택 주변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그중 바로 인근의 500년 된 천연기념물 제289호인 화양리 소나무가 유명하다. 소나무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고 가지가 용처럼 생겨 일명 구룡목(龜龍木)이라고 하는 이 소나무는 해발 500m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한 나곡마을의 논 가운데 있다. 광해군 5년(1613)에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역적으로 몰려 삼족이 멸하게 되자 김제남의 6촌뻘 되는 사람이 도망 와서 이 나무 밑에 초가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합천묘산묵와고가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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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 문화관광체육국 관광진흥과  
  • 연락처 : 055-211-4611

최종수정일 : 201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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