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초기의 무장, 자는 여화, 호는 임곡, 시호는 정열공, 본관은 통천, 지중추부사 운해의 아들. 고려 우왕 (1376년)에 창원시 북면 내곡리 무등촌에서 태어났으며, 1446년에 사망하였다. 14세때 활쏘기를 잘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학문은 양촌 권근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9세 때인 조선조 태조 3년에 갑무과에 합격하였다. 21세때 부친을 따라 영해의 반포에서 왜적을 격파하였다. 1419년(세종 원년)에 삼군도절제사로서 대마도에 출정하여 점령하고 천신산에서 대마도 도주의 항복을 받았다. 세종 15년 계축에 야인 이만주가 압록강의 지류인 파저강을 건너 침입하여 인민을 학살하므로 장군이 도절제사로서 평안·황해 2도 군병 1만5천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야인을 격퇴하였다. 세종 15년 왕은 선위사 박신생을 군영에 보내어 여러가지 물품을 하사하였다. 장군이 개선하는 날, 세종은 근정전에서 큰 연회를 베풀고 왕이 친히 술잔을 잡아 위로하였다. 세종 16년 우의정이 되었다. 이것은 무인에게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장군은 관직을 맡아서는 청렴결백하여 청백리로서 이름이 남았고 장수로 30년을 지내면서 그 위력이 변경에까지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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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