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하서면(현 무안면) 삼태리(三台里)에서 1893년 11월 2일 출생하였다. 기독교 신자로서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한 후 독립운동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군자금 모금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부터 군자금 50원(圓)을 모금 송부하고 계속 활동하다가 배신자의 밀고에 의해 동래군 구포면 화명리(華明里)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관계된 사람을 모두 색출하기 위해 갖은 고문을 다 당했으나 혀를 물고 남은 7명의 동지를 말하지 않았다. 일본인 검사도 할 수 없었는지 박지원 한 사람만 송국하여 1921년 1월 31일에 징역 7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4년에 감형이 되어 5년 3개월간의 긴 옥고를 겪고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하고 영령(英靈)을 위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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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