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739m의 관룡산 서남에 위치하고 있는 관룡사는 신라 진평왕 5년(583년)에 증법 국사가 초창한 신라의 8대 사찰의 하나이다. 원효 대사가 제자 천여 명을 데리고 화엄경을 설파한 도량이다.
관룡사란 이름이 붙여진 유래는 진평왕이 원효 대사의 화엄경에 개심하여 칠성 백일기도 후 화왕산 삼지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관룡사라 이름하였으며, 그 뒷산을 구룡산이라 이름하였다.
당초에는 약수터가는 구룡산 아래 있었는데 숙종 30년(1704년) 가을 대홍수로 큰 피해를 입고 1712년 이 곳에 대웅전과 기타 건물을 재건했다는 기록이 관룡사사적기(유형문화재 제183호)에 기록되어 있다. 현재 관룡사에는 보물 4점과 지방문화재 5점이 있다.
관룡사 입구에는 고려 공민왕 때 개혁정치를 주도한 신돈 (辛旽 ? ~1371년)이 출가한 사찰인 玉泉寺址가 있으며, 또 신돈이 태어났다는 一味寺址가 있다. 주변의 깊은 옥천계곡은 많은 피서객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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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