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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관광

태봉산

태봉산의 파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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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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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산청군 생초면 상촌리  길찾기
  • 관리기관산청군 문화관광과
  • 문의전화055)970-6421
  • 편의시설
    장애인편의시설 놀이시설 수유실 유모차 자전거 와이파이

상세내용

태봉산 자락에는 외형이 크고 작은 수십 기의 고분이 산재하여 경상남도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도굴되고 개간되어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몇 기에 지나지 않다. 그렇지만 주변의 유물 등으로 미루어 보아 가야 시대의 지배층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능이 있는 것을 연관해 생각해 보면 주변에 금과 쇠가 생산되던 곳도 있어서 큰 세력의 부족이 살았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고분군 주변에 오래된 산성이 있다. 어외산성이라고 하며 일명 척동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의 지형은 넓은 들을 건너다보는 강병 벼랑 위에 쌓은 석성으로 한쪽은 서울로 통하는 삼남대로상의 본통재이다. 옛날의 임천원에 가까운 본통재를 넘으면 옛 사근도 역으로서 사근 찰방이 배치되었던 교통의 요충지이다. 7세기경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잦은 공방전에 이용되었을 것이다.
이 성은 성내에 동서 13m, 남북 12m 규모의 못이 남아있고 성의 길이는 150m 정도가 남아있다. 가깝게는 임진왜란에도 의병들이 왜적을 막는데 이용된 곳이다. 본통재 아래 강정은 물이 맑고 경치가 뛰어나다. 그래서 이곳은 철따라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지리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마천을 거쳐서 흘러온 임천의 물과, 덕유산에서 남으로 흐르는 남계와 위천이 합수하여 이룬 뇌계가 합쳐지는 곳이다. 여름이면 두 줄기 원류에서 흘러온 모래밭에 일광욕을 즐기고 시원한 강물에 몸을 담가서 생기를 되찾는다.
강선대는 목욕을 즐기던 신선의 이야기가 있다. 버들숲과 주점에는 이곳의 풍미를 즐기는 손님이 많다. 이곳에서부터 강 이름은 경호강이라 하고 강 건너 넓은 들은 고읍들이라고 한다. 고읍이란 통일신라 이후 이곳이 산음현이 소재지였다는 말이다. 그 당시에 맑은 강을 끼고 펼쳐진 넓은 들과 강 건너 견고한 어외산성을 갖추었으니 충분히 규모가 느껴진다. 지금도 옥거리와 창마을 등이 남아있다.
옛날에 이 고읍들은 선사시대의 주거지로 있다가 그 뒤에 읍치의 중심지로 있었으나 물길이 없어 황량하게 묵은 곳이 많았다. 전답마저도 가뭄을 견디지 못해 여섯 마을 주민이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를 짓던 곳이다. 그런데 조선조 광해군 때 경은 배의중이 이 고장에 살았다. 그는 강물을 지척에 바라보고 해마다 가뭄에 시달리는 이 들녘을 위해 백방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하룻밤에 신령의 계시를 받고 아침에 강 위쪽 산기슭을 돌아가 보니 이상하게도 하얀 서릿발이 멀리 뻗쳐 있었다. 즉시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곳에 수로를 개설하는 일을 서둘렀다.
대강에 보를 막아서 물길을 돌려 나오다가 중간에 큰 바위가 가로막히므로 아무리 궁리를 해도 당시로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좌절하고 돌아왔는데 마음속으로 천우신조를 기원하던 이튿날 아침에 뇌성병력을 하고 비가 쏟아지더니 마침내 그 바위가 낙뢰로 부서졌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용기를 얻어서 남은 일을 마치고 물을 끌어서 3,300 두 락의 논이 옥토로 변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가뭄이 심하여 모든 농사를 다 망쳤는데 유독 이 고읍들만은 풍년 농사를 지었다. 가을걷이를 마친 여섯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경은공의 은덕을 기려 송덕비를 수로 둑에 세워 잊지 않고 있다.
또한 이곳 평천서원에는 무열공 배현경, 임당 배신침, 심원재 배세겸을 향례한다. 평천마을 추배골은 옛 산음의 모호리로서 그곳에는 역사의 한 가닥 사실이 있다.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왜적이 물밀듯이 쳐들어오자 선조가 의부로 몽진 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신점과 정곤희 등을 명나라에 보내서 원군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명나라 조정에서는 이론이 분분하여 파병이 어렵게 되었다.
이 때에 병부상서 석성이 강력히 주장하여 파병할 것을 결정하고 조승훈과 이여송에게 대군을 주어서 왜병을 격퇴하게 하였다. 그 뒤에 심유경을 보내서 왜군과 화의를 도모하던 중 왜군의 간교한 꾀에 넘어가서 화의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명나라 조정에서는 그 책임을 물어서 석상서를 하옥시켰다. 장차 가문에 닥칠 화를 염려한 석상서는 옥중에서 은밀히 장자 담을 불러서 조선으로 망명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래서 담은 황해도 해주로 오게 되었다.
선조는 그를 수양군에 봉하고 관향을 해주로 쓰게 하였다. 둘째아들 존은 성주에 망명하여 그 곳에 살게 하였다. 그러다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서자 조선에 있는 명나라 사람들을 잡아가게 되었다. 그때 자손들이 산음으로 치신을 한 곳이 이 추내골이었다. 조정에서는 사패지로 땅을 주어서 정주케 하였다. 그렇게 해서 해주 석씨가 이곳에 100여 년을 살았는데 그래도 불안하여 지리산 추성동에 이주하였다. 그러고 난 뒤에 추내골은 황폐되고 사패지도 잃게 되었다. 지금은 자손들이 경북 지방에도 살고 있으면서 이곳에 표석을 세워서 사실을 기록하였다.

등반코스
  • 태봉산 등산로는 산청읍에서 3번 국도를 따라간다.
    함양으로 가다가 생초면 소재지의 면사무소 마을 계곡을 따라 가다가 왼쪽 능선을 올라서게 된다.
    완만한 능선과 솔밭 길을 1km를 가면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비록 높이는 400m도 안되지만 산청의 주요 산군이 거의 조망된다.
    특히 경호강의 넉넉함을 느끼게 되고 대전-통영고속도로의 활발함도 보게 된다.
  • 하산은 고속도로 쪽을 내려서서 3번 국도 쪽으로 방향을 틀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길을 따라 내려오면 계곡과 연결되므로 한층 운치 있는 산행이 될 것이다.
    하산거리와 시간은 1.5km이며 50분이 소요된다

교통정보



  • 남해고속도로→서진주IC→진주↔대전간 고속도로→ 생초IC→ 어서리(생초면소재지)


  • 88고속도로→함양수동IC→ 진주↔대전간 고속도로→ 생초IC→ 어서리(생초면소재지)


  • 진주↔함양 국도 3호선 : 진주→생초면→ 어서리(생초면소재지)


  • 함양↔진주국도 3호선 : 함양→생초면→ 어서리(생초면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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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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